대통령을 직접 뽑자는 요구
전두환 정부 시기에는 강압적 통치와 정치적 자유 제한에 대한 반발이 이어졌다.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게 하자는 직선제 개헌 요구도 커졌다. 6월 민주항쟁은 특정 대학만의 사건이 아니라 학생, 종교계, 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전국적 민주화운동이었다.
1987년 초부터 쌓인 분노
1월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과 그 진상을 축소·은폐하려 한 일이 큰 반발을 불렀다. 4월 13일 전두환 정부는 개헌 논의를 중단하고 기존 헌법에 따라 정부를 이양하겠다는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호헌은 당시 헌법을 그대로 지킨다는 말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6월의 전국적 항쟁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6월 10일 국민대회를 준비했다. 하루 전인 6월 9일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진 일은 시민들의 분노를 더했다. 6월 10일 이후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했다. 6월 18일 최루탄 추방대회,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 등으로 참여가 이어졌다. 이한열의 피격과 이후 사망은 시점을 구분한다.
6·29 선언과 헌법 개정
6월 29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여야 합의와 국민투표를 거쳐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헌법이 마련됐다. 선언 발표와 개헌 완료는 같은 사건이 아니며,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제도로 바뀐 점이 중요한 성과다. 학습할 때는 권위주의 통치와 직선제 요구라는 배경, 주요 사건과 시위라는 전개, 선언과 개헌이라는 결과를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