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에는 문명이 없었을까
열대 기후 때문에 필리핀이나 브라질에 문명이 없었다는 주장은 출발점부터 검토해야 한다. 무엇을 문명이라고 부르는지에 따라 비교 대상이 달라진다. 잉카처럼 넓은 영역을 통합한 제국이 없었다는 말과 조직적인 정착·교역 사회가 없었다는 말은 같지 않다.
필리핀의 해상 교류
필리핀 국립박물관은 부투안에서 발견된 선박과 서기 900년으로 해석되는 라구나 동판 명문 등을 주변 동남아 지역과의 해상 교류를 보여주는 자료로 설명한다. 외부와 고립된 채 사회적 조직이 전혀 없었던 지역이라는 해석과 맞지 않는 증거다.
브라질 아마존의 정착 사회
2008년 Science에 발표된 상부 싱구 연구는 유럽인과 접촉하던 무렵 브라질 아마존에 복잡한 정착·토지 이용 체계를 갖춘 사회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여러 소규모 정치 공동체가 서로 연결된 형태였다. 거대한 단일 제국과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러한 사회의 존재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환경 설명의 범위
현재의 국가 이름이나 덥고 습하다는 특성만으로 수천 년의 다양한 사회를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특정 시대·지역의 정착 규모와 교류, 정치 조직을 실제 유적 및 기록에 맞춰 비교해야 한다. 문명의 유무를 기후만으로 판정하면 확인된 역사적 다양성을 놓치게 된다.